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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건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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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과연 건축은 누구를 위한 건축이어야 하는가?' 라는 문제를 가지고 고민을 해 보았을 것이다. 가장 근원적인 질문임에 틀림없다. 건축가는 자기만의 철학을 구축해 가면서 자신을 위한 건축을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자신의 건축 철학이 없는 건축가도 많다. 한창 배고픈 시절에는 일거리 찾기가 힘들었고, 건축주가 하라는 대로하는 하수인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 유명 건축가가 건축주를 고를 수 있는 권한까지 행사하는 경우로 바뀌게 되었다. 아주 극소수의 스타 건축가들에게 허용되는 이야기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이런 유명 건축가는 '내 것이 싫으면 다른 건축가한테 가라'는 식이다. 좋게 말하면 소신 있는 행동이요, 다르게 말하면 배부른 소리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스타 건축가는 과연 우리의 본보기가 될 수 있는가? 아니면, 그들은 별종이므로 아예 무시하는 것이 더 나은가? 하지만, 우리 평범한 건축 쟁이는 스타 건축가를 꿈꾸며 오늘도 열심히 투쟁하고 있다. 스타 건축가들은 자신들의 색깔이 확실하다. 그들은 건축주나 사용자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이미지를 실현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자신의 이미지를 실현하는 것은 건축가와 건축주의 자유다. 하지만, 문제는 자신의 건축 세계를 건물 사용자에게 또 일반 대중에게 강요하기까지 한다. 건물을 보기 싫어도 건물을 볼 수밖에 없는 건축의 물리적 환경과 사용자가 그 건물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강제성은 무형의 폭력과 비슷하다. 

스타 건축가나 일반 건축가나 똑같이 고민해야 할 내용이 있다. 문제는 건축가가 건물을 통해 실현한 그들의 건축 철학(건축가를 높이 평가한 부분임을 밝힌다.)을 일반 대중이 알아주느냐 하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한다. 건축가가 심오한 철학을 가지고 디자인을 했는데, 사용자는 그것을 전혀 인식하고 있지 못한다. 가장 유명한 예가 하나 있다. 바로 아돌프 루스가 일반 대중과 싸우면서 건물을 지은 루스 하우스다. 

"귀머거리들아 들어라"라고 외친 아돌프 루스, 그 시대의 문화의 타락과 허영을 신랄하게 꼬집은 말이다. 이 구절은 아카데미즘이나 건축 작품성을 사랑하는 건축가들이 즐겨 써먹는 문구이기도 하다. 건축이 시대정신을 바꿀 수 있다는 이상향에 사로잡힌 것일까, 아니면 그 시대 정신을 통찰하고 나는 이러지 말아야 겠다 라는 저항의 표현일 것이다. 어찌되었든, 자신이 건물을 디자인하는 것은 자유다. 하지만, 오만한 엘리트주의로 대중을 비난하고 무시하는 처사는 잘못된 것이다. 일반 대중을 돼지로 몰아 부치고, 자신은 마치 하늘에서 부여받은 성직인양 행사하는 것은 오만과 자만이 가득한 부분일 것이다. 

'장식은 죄악이다'라는 말을 그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많다. 이 말은 의미 없는 장식을 비난하는 내용이다. 아돌프 루스도 루스 하우스에 장식을 했다. 내부로 들어가면, 이 건물이 루스의 건물일까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화려한 장식이 가득 차 있다. 과연, 그 건물을 방문하는 사람이 얼마나 루스의 건축 철학과 시대 철학을 알고 나 있는지 궁금하다. 오히려, 루스가 비난한 오토 바그너의 건물이 덜 장식적이며, 장식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우체국 건물을 설계하였다. 장식은 실용적인 의미를 가져야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즉, 구조적인 기둥 역할을 하면서 장식이 있어야지, 헛 구조이면서 장식을 위한 장식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루스는 누구를 위한 건축을 한 것일까? 썩어 가는 시대정신에 일격을 가한 말 그대로 시대를 위한 건축이었을까? 아니면, 심오한 그의 건축 철학을 건물에 표현 한 것일까? 자신의 건축 논리를 표현했음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루스의 장식에 대한 태도는 일관적이지가 않다. 루스도 못 풀 문제는 일반 대중이 그의 건축 의도를 건물을 통해서 알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건축을 공부한 사람도 알기 어려운데, 일반 대중이 알기란 하늘에 별 따기 일 것이다. 

다시 근원적인 문제로 돌아와, 건축은 누구를 위한 건축이어야 하는 점이다. 나의 개똥 철학은 건축은 사용자를 위한 건축이어야 한다. 사람을 위한 건축이어야 한다. 사용자가 편해야 한다. 사용자 우선 이어야 한다. 건물의 기능을 잘 맞추어야 한다. 환경에 순응해야 한다. 건축은 자연의 일부분이다. 자연과 인간을 담는 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건축이다. 

건축은 건축가만을 위한 작품이 아니다.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사용자를 우롱해서는 안 된다. 불편해서는 안 된다. 작품성을 추구한다고 너무 많은 것을 희생해서는 안 된다. 사용자가 누구인가를 알고 거기에 맞추어 설계를 해야 한다. 노인 치매 시설에 노출콘크리트로 도배해 놓고, 작품성 운운하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아무리 돈이 좋다고, 물리적인 환경을 개판으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시골에 가보라. 그 옛날, 건축가 없이도 훌륭한 건조 환경을 만든 우리 선조를 생각해 보자. 특별한 건축 이론도 없었으며, 도시 계획 이론도 없었다. 그들이 산 그 시대에 맞는 환경을 만든 것이다. 사람을 위하고, 자연의 일부분으로 건축을 한 겸손한 선조 들의 노고에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이성의 오만이 아니라 겸허한 마음으로 자연의 일부분일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기꺼이 수용한 그 정신에 오늘을 사는 한 건축가로서 부끄럽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생각하는 건축은 지극히 인간적이다. 아무리 사이버가 발전하고 기술이 발전해도 인간이 없는 미래란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이다. 시대가 어떻게 변하든, 인간을 건축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 건축은 건축가의 노리개가 아니다. 인간은 기술의 노예가 아니다. 건축가는 서비스 맨 이다. 알량한 지식 몇 개로, 사용자위에 군림하는 오만한 독재자가 아니다. 건축가는 에고이스트가 아니다. 건축을 희생양으로 또 사람을 희생양으로 출세할 생각을 하지 말자. 당신의 건축 작품(?)은 당신의 수많은 작품 중의 한 개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거기에 사는 사람은 평생을 그 속에서 지낸다는 것을 명심하자. 스타 건축가의 꿈을 버리자. 성실한 건축가로서 사람을 위한 건축을 하자. 

진리는 평범한 것에 있다.

 

이관용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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